"그러니까 하시려는 일이, 그리고 제가 하고파 하는 일이…… 그저 알 라산의 몰락을 재촉하는 일일 뿐이라는 말씀인가요?"
후사리 이븐 무사는 그들 옆에 자리 잡고 앉았다. 그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아샤르께서는 인간이 하는 일은 사막에 발자국을 찍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네. 자네도 알지 않나."
그녀도 미소를 지어 보이려 했지만 할 수가 없었다.
"킨다트인들은 이렇게 말하지요. 차고 기우는 달들 아래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그리고 스스로를 '방랑자'라고 부르는 우리 킨다트인은 모든 인간들의 삶을 상징하고 있다고요."
그러고는 잠시 후 그녀는 다시 대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야드인들은 뭐라고 하나요?"
"'태양조차 끝내는 지고 마는 법'이라고 하오, 선생."이 책이 '역사 판타지 소설'이라고 소개되었을 때, 나는 이것이 '실제의' 이베리아 반도에서 일어난 십자군 전쟁 전후의 어느 사건들에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한 이야기이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이야기의 많은 부분을 이베리아 반도의 역사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 냈음이 분명하고, 야드의 기사들과 별의 자손들, 그리고 킨다트인 방랑자의 이야기가 지시하고 있는 것이 명백할 지라도, 그러나 이것은
'판타지'이다. 실제의 역사에 작가의 상상력을 끼워 넣은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의 상상력이 새로이 빚어낸 역사인 것이다.
이하는 스포일러를 포함한 리뷰입니다.아마르라는 남자가 있었다. 카르타다 알말릭 왕의 친구였고, 아버지의 이름을 물려 받은 알말릭 왕자의 스승이었다. 그의 시에 사람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고, 그 자신 역시 시인으로 기억되길 원했지만 그는 군인이자 외교관이었고 무엇보다, 사람들은 그를 '칼리프의 살해자'로 기억했다.
예하네라는 여자가 있었다. 킨다트인이었던 그녀는, 알말릭 왕의 아내와 아이를 살려낸 대신 눈과 혀를 잃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페자나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녀는 '해자의 날' 아침 아마르 이븐 카이란을 만났고, 그 덕에 후사리 이븐 무사는 그 날 살아 남았으며, 그녀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페자나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로드리고라는 남자가 있었다. 발레도의 대신이었던 그는 라이문도 왕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뒤이어 즉위한 라미로 왕은 충분히 의심스러웠고, 그는 궁정대신 자리에서 물러나 '야드의 기사들'의 선봉에 서서 페리아스를 징수하기 위해 페자나로 떠난다.
『알 라산의 사자들』은 아마르, 예하네, 로드리고가 그 시대를─마지막 칼리프가 살해 당하고, 실베네스가 몰락했고, 카르타다가 쇠락하는 와중, 발레도가 남쪽을 주시하던 때, 야드의 이름으로 모인 기사들이 성전을 위해 뱃머리를 동쪽으로 향했던 순간을─ 어떻게 살아나갔는지, 얼마나 즐겁게, 얼마나 고통스럽게, 얼마나 치열하게 그 시대를 지냈는지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알바르 데 펠리노라는, 발레도의 시골에서 야드의 기사로서 아샤르인을 몰아내길 열망하던 청년과, 후사리 이븐 무사라는, 뚱뚱하고 우유부단한 비단 상인이 있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사람을 죽일 수 있었던 어머니와, 순진한 사제와, 지혜롭지만 늙은 킨다트인 비서와, 이름을 다 적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알 라산의 사자들』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그들 중 몇몇의 '마지막'이 지나치게 조용하고 아름다워서 슬펐음에도 이 이야기는 내게 사람들이라기보단 어떤 시대의 '끝'에 관한 이야기로 기억될 것 같다. 그 시대의 끝은 야드의 나라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실베네스 궁정, 라고사의 카니발, 아마르 이븐 카이란의 시가 내 안에서는 더욱 찬란했고 그랬기에 이 이야기는 내게 알 라산의 '끝'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작가의 손에서 이십여 년으로 압축되어 펼쳐진 알 라산과 에스페라냐의 이야기 속에는 배신, 사랑, 이별, 죽음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 시대의, 무언가 끝나고 무언가 시작되는 순간의 흐름이 너무나 세차고 거대해서, 사람들은 답 없는 질문에 방황하며 그 흐름에 휩쓸린 채 발버둥친다.
그곳에는 무수한 가능성이 있었다.
"야, 이거 정말 두 사람 모습이 볼 만하네요. 이미 가면무도회 복장을 한 것처럼 보여요. 제대로 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두 분을 보고 뭐라고 할까요?"
"이번 주에 라고사에서 그런 사람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만, 아마 우리 두 사람이 이 반도에서 얻을 수 있는 최상의 것을 대표한다고 말할 걸세. 자네 앞에 겸손히 서 있는 이 두 사람, 용감한 알바르와 별 볼일 없는 이 몸은 다른 세계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그 세계들을 혼합하고 뒤섞을 수도 있다는 증거라네. 서로에게서 가장 좋은 점들을 취하여 눈부신 불멸의 새로운 통합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말이야."그리고, 만약에, 어쩌면.
개인으로서, 선택이 필요했던 무수한 분기가 있었고 그들 모두가 그 순간의 최선을 위해 발버둥 쳤다. 발레도를, 그리고 아내를 사랑한 라미로 왕과,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알말릭과, 실베네스의 영화를 그 도시 안에 담아내려 했던 바디르와 마주르, 어느 킨다트 학자의 물음에 두려움과 경의를 동시에 느꼈던 야지르, 그들 중 누구를 완벽한 악인, 모든 사태의 원흉으로 몰아 세울 수 있을까. 예하네는 끝 없이 묻는다. 처음 그녀의 적은 아버지의 눈을 뽑고 아버지의 혀를 자른 카르타다의 알말릭 왕이였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야드인의 손을 통해 킨다트 민족은 박해 받았고, 소레니카의 킨다트인 공동체는 끔찍한 말로를 겪는다. 그러나 또한 페자나에서 아샤르인들이 킨다트인을 죽이고 집을 불태웠다…. 누가 그들의 적인가. 누가 악인이고, 누가 영웅인가. 알바르가 생각했던 성전, 영광, 그러한 전쟁이 어디에도 없었던 것처럼, 나는 사실 이 책에 나오는 누구도 순수한 악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방금 떠오른 가르시아 데 라다라든가, 제로드 드 셰르발레스 등은 좀 고민되지만, 특히 가르시아 데 라다의 경우는 고민할 여지도 없지만, 제로드의 경우에 나는 이베로 사제를 떠올린다. 순진한 선의가 악의와 다르지 않은 결과를 낳는 순간들.
"이건 전쟁이오, 아마르. 우리 둘 다 어린애가 아니요. 이건 아샤르와 야드 사이의 전쟁이고 추악한 꼴도 보게 될 거요. 수백 년을 이러고 살아왔고 소리야를 향해 출항한 다른 군대도 있는 마당이니 추악함보다 더한 것이 벌어질 수도 있소."
"추악함보다 더한 게 뭔지 궁금하군요."
"하려는 말이 그게 아닐 거요. 어쨌건 어느 정도는 답을 해줄 수 있소. 사람들이 여러 세계들 사이에서 움직일 수 있는 조그만 공간이 그 세계들이 증오의 도가니에 빠진 탓에 사라져 버릴 때, 추악함보다 더 나쁜 것이 찾아오오. 언젠가 우리에게도 그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소."'그런 시대'였다고 체념한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그리고 작가는 사실 사람들에게 따뜻했다. 최선을 다해 살려고 했던 사람들은 (주요 등장인물에 한해서) 대체로 보답 받았다. 가르시아의 목은 화살에 꿰 뚤렸고, 디에고는 회복했으며 엘리아네와 이샥은 천수를 누렸다.
그렇지만 또 어떤 부분에서 ─이것이 '판타지'라는, 역사를 소재로 작가가 새로 빚어낸 이야기임을 감안할 때, 작가는 몹시 냉정했다. 어쩌면 전쟁이 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고, 후사리 이븐 무사가 말했듯이 '눈부신 불멸의 새로운 통합체'를 만들어낼 수도 있었지만 결국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이십 년 뒤에 남겨진 세 개의 술잔을 비추는 달빛은 부드럽지만 쓸쓸하다. 누구보다 서로를 잘 이해했던 두 사람은 결국 싸웠고 한 사람은 죽었다. 알 라산의 사자는 모두 죽었고, 에스테렌은 실베네스보다 더 화려해질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가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한다. 마냥 기쁠 수는 없는 행복 말이다. 누군가의 정의가 누군가의 불의일 수 있고, 또 어떤 행복은 희생과 슬픔 위에서 자라나는 것이기도 하다. 한 시대의 끝이 한 시대의 시작이기도 하듯이.
가상의 지역, 가상의 국가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일들이 현재를 반추하게 하기에 『알 라산의 사자들』의 끝은 더욱 무겁다. 이 이야기를 천 년 전의 옛날, 먼 유럽의 이야기로 치부할 수 있을까? 접경의 빈 공간이 사라진 증오의 시대가 오늘의 여기에 펼쳐지지는 않았는가 나는 질문한다.
또한 바란다. 부디 그러한 증오가 이곳에 자라지 않기를, 그리고 포기하지 않았던 그들처럼 나도 끝까지, 질문을 멈추지 않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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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긴 책입니다. 예쁘죠?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각 잡은 말투 때려 치우고 가장 강렬했던 기억을 토로해 보겠음.
'건전한 블로그'를 표방하고 있지만, 아마르 나올 때마다 의심의 눈길을 떼려야 뗄 수 없었기에 고백합니다.
한 쪽 귀에만 달린 진주 귀고리라든가.
알말릭 1세에 대한 사랑이라든가.
알말릭 2세와의 소문이라든가.
부인이 질투할 정도의 교감이라든가.
서양골동양과자점의 모씨를 지칭하는 '그 단어'가 떠오른 건 제 머리가 썩은 탓입니까 아니면 아마르가 썩은 탓입니까. 아니 뭐 이 사람들 각자 유부남의 길을 걸었지만 말입니다. 근데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두 사람만의 세계라는 건 좀 위험해요. 아니, 많이 위험해요.
또 한 가지.
다 읽고 나서 진짜 궁금한 거 몇 가지 있는데 말입니다. 하나는 자비라의 필살기 커맨드고요, 둘째는 황금 끈의 정확한 사용법입니다. 아마르와 알바르는
가이 가브리엘 케이씨는 현기증 나는 독자들을 위해 얼른 진실을 밝혀 주세요. 나 말고도 이 두 개가 제일 궁금했던 사람 분명히 있을 거라구요(제발 있다고 해 줘요orz).
마지막으로 불평 좀 하겠습니다.
첫째, 책이 많이 약해요.
신주단지 모시듯 책을 다루지는 않지만 험하게 보지도 않습니다. 떨어뜨린 적도 없고 던진 적도 없고, 펼친 채 엎어 놓은 적도 없어요. 가방에 몇 번 넣었다 뺀 것 뿐인데
보이십니까? 책등 부분의 모서리가 다 닳았습니다. 단순히 색이 벗겨진 게 아니라 제본 부분이 너덜거려요. 일단 테이프로 고정시켜둘 생각이지만 얼머나 갈 지 자신 없습니다.
책이 정말 예쁘긴 합니다만, 내구성에도 신경을 써 주세요.
둘째, 오타가 많습니다. 대여점 판타지 소설도 아니고 말이죠. 아니 등장인물 소개에 나온 등장인물 이름에서 오타를 내면 어쩌십니까. 그 캐릭터가 아무리 재수 없고 구제의 여지가 없는 쓰레기라도 그러는 게 아니죠. 고유명사 오타는 뭐 그렇다 쳐도, 은/는/을/를 조사가 삑사리 난 부분, 식솔을 식속이라고 쓴다든가하여 교정이 부족한 부분이 꽤 보입니다.
이미 출판된 책이니 어쩔 수 없지만 좀 더 신경 써 주셨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티가나』재판 해 주세요ㅠㅠ 살 게요! 산 다고요!!!
읽고 싶은데! 돈도 있는데! 사지를 못 해ㅠㅠㅠㅠㅠㅠㅠㅠ
그리고 가이 가브리엘 케이의 다른 책도 번역해주신다면 나오는대로 다 사겠습니다…. 황금가지님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orz
덧글
윈디아 2010/03/29 05:23 # 답글
'그 단어'가 떠올랐던 사람 여기 있습니다. 역시 저만 그런게 아니었군요ㅠㅠ;;;자비라 커맨드도 그렇고 황금끈의 용도는 정말이지 작가의 진의가 당최 뭔지... 현기증이 납니다만 한편으로 위안이 되네요.(음?)
책이 예쁘긴 한데 확실히 불안하더라고요. 올리신 사진 정도까진 아니지만 제 책도 모서리가 하얗게 닳았어요.ㅠㅠ. 렛츠리뷰 구경왔다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겨움 2010/03/29 18:07 #
바, 반갑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셨다니 다행이네요.읽으면서 사람 죽어 나갈 때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가; 아마르만 나오면 많이 미묘해졌습니다… 처음 읽을 때는 내용 따라가느라 급급하다가, 리뷰 쓰느라 듬성듬성 읽기 시작하니 여러 부분들이 눈에 확확 들어오더라구요orz
양장본인데 생각보다 허약해서 놀랐습니다. 주변에 빌려주고 팬을 늘려보려고 했는데 가방에 넣기도 불안해서 어쩔지 걱정이에요;
유로스 2010/03/31 02:29 # 답글
티가나 예스24에서 팝니다
겨움 2010/03/31 19:25 #
우왓 정보 감사합니다!알라딘에서 품절이 아니라 절판 뜬 거 보고 다른 곳도 없겠거니 했거든요.(잘 좀 알아볼 걸;)
좋은 책인데 알 라산도 티나가도 많이 팔려서 증쇄했음 좋겠어요.